안희연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매일 아침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빛기둥 아래 놓인 색색의 유리구슬 갓 낳은 달걀처럼 따뜻한 그것을 한가득 담아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유리구슬을 넣어 빵을 굽는다 빵 하나에 구슬 하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향긋하지 않은 것은 없다 실수로 구슬 하나를 떨어뜨린 날 할아버지께 호되게 혼이 났다 아가야, 저 침묵을 보거라 한 사람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흩어진 유리 조각 틈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손그릇을 만들어 물고기를 담으니 기린처럼 목이 길어졌다 할아버지, 영원은 얼마나 긴 시간이에요? 파닥거릴 수 없다는 것은 빛나는 꼬리를 보았다 두 눈엔 심해가 고여 있었다 층층이 빵을 실은 트럭이 지상을 향해 가는 ..
2020.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