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조율 /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를테면 공동묘지 어떤 무덤이나, 오단 서랍장 세 번째 수납 칸 되어, 혹은 비켜간 채널 되어 이제껏 비가 왔던 모든 날들을 수납한다 욱여넣을 문갑 한 칸 찾을 수 없다 당분간 엄마가 아침 드라마를 괜히 끊는다 햇볕 찾아오는 어느 날 가사까지 지어올 리 없다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제부터 당신은 모르는 사람 어제를 닮은 키 큰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한 걸음 밟는데 부스러기 섬들 다시 돋아나는데 펄펄 우는 폭우에 펼쳐질 나는 무지갯빛 우산, 아직 펑펑 젖은 무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사람은 오는..
202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