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2)
-
안현미 / 다뉴세문경
안현미 / 다뉴세문경 언젠가 나는 거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오늘밤이 될지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거울 밖엔 장미가 한창입니다 어디선가 몰려온 구름처럼 무거운 음악이 흐르는 이곳을 빠져나가면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사랑에 빠져 버릴 수 있었던 초능력을 상실한 지 너무 오래 다시 장미는 피는데 나는 죽은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자명종이 울리는 밤입니다 다른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밤입니다 언젠가 나는 거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냉면을 먹고 낙산 성곽 길을 내려오던 밤, 당신이 내게 건넨 다뉴세문경을 닮은 거울에 대하여, 그 거울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무늬에 대하여, 오랜 세월 ..
2020.04.03 -
최금진 /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최금진 /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는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획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나고..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