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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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흰 건반이 자정인 것처럼 검은 건반은 잠든 사람을 두세 칸 건너뛰며 놓여 있었다 부인들은 죽을 날짜를 혹은 생일을 피아노 음계에서 고르고 있었다 계절이 알고 있는 포유류의 음계는 모유 냄새보다 더 좋은 찌그러진 수학여행 버스들 깨진 창을 네 배에 모조리 쓸어담고 반추동물이 밤새도록 어루만지는 축축한 서너 개의 방에서 파수꾼은 옳다, 혹은 외롭다 그런 날 성인용 기저귀처럼 포도원은 수치스런 곳을 덮어준다 가렸어도 여전히 부끄러운 착용감 드러운 이 생과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처음 마주친 생은 내 약점이 일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회당 옆 묘지, 수학여행길의 아이들은 꺾인 꽃처럼 너덜거리고 내가 날린 종이비행기의 평화를 섬뜩함으로 바..
2020.07.04 -
조연호 / 여름
조연호 / 여름 낭떠러지의 여름이다 여름마다 여름을 뒤돌아보는 것이 피곤했지 나를 그네라고 부르는 사람은 머리를 사슬로 감아주자 여름마다 자기를 흔들어도 좋다고 말했다 추락하는 여름이다 팔다리가 달린 검정과 놀았지만 혼자서 했던 연애 나도 허공이었던 것을 너만큼 변심으로 내 발등에 엎지를 줄 안다 천박한 짓을, 자아보다 못한 짓을 땀샘과 모공으로 채우며 지금은 덩굴손이 붙잡는 것을 윤회의 크기라고 생각하며 네가 흔든 것을 내가 흔들렸던 것으로 비교하는 멍청한 짓을 하며 너를 잊고 있다 조연호 / 여름 (조연호, 천문, 창비, 201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7.04 -
조연호 / 배교
조연호 / 배교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소년병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조연호 / 배교 (조연호, 천문, 창비, 201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