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흰 건반이 자정인 것처럼 검은 건반은 잠든 사람을 두세 칸 건너뛰며 놓여 있었다 부인들은 죽을 날짜를 혹은 생일을 피아노 음계에서 고르고 있었다 계절이 알고 있는 포유류의 음계는 모유 냄새보다 더 좋은 찌그러진 수학여행 버스들 깨진 창을 네 배에 모조리 쓸어담고 반추동물이 밤새도록 어루만지는 축축한 서너 개의 방에서 파수꾼은 옳다, 혹은 외롭다 그런 날 성인용 기저귀처럼 포도원은 수치스런 곳을 덮어준다 가렸어도 여전히 부끄러운 착용감 드러운 이 생과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처음 마주친 생은 내 약점이 일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회당 옆 묘지, 수학여행길의 아이들은 꺾인 꽃처럼 너덜거리고 내가 날린 종이비행기의 평화를 섬뜩함으로 바..
2020.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