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코러스」
너는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가는 대신 빈 교실에 남아 도시락을 먹었고 나처럼 매일같이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 그리고 너는 내가 걸어 둔 외투에 항상 자신의 외투를 겹처 걸어 두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너는 엽서만 한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에 눈송이처럼 떨어져 녹아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읽던 책을 잠시 시옷자로 덮어 두고 옷을 챙기고 나가 운동장 주변을 좀 걷다 들어올까 싶다가도 나의 외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너의 외투를 바라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전화를 받으려고 황급히 나가는 네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두고 간 수첩을 집어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선스러웠던 복..
20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