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 냉동 새우
허수경 / 냉동 새우 이 굽은 얼음덩어리를 녹이려고 물을 붓고 기다렸다 몸통은 녹아가도 굽은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피곤,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물어지지 않은 피곤의 흔적이라는 헤아릴 수 없음도 녹은 새우를 어루만졌다 말랑말랑하구나, 네 몸은 이루어질 수 없는 평화 같은 미지근한 바다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꿈에서 돌아오듯 나는 시를 쓰는 것을 멈추었고 이제 시 아닌 다른 겹의 시간에게 마른 미역 봉지를 건네주었다 새우는 다시 얼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 저녁을 향하여 무심히 죽어 있었네 제 살던 곳에서 끌려나와 동유럽 겨울 눈 속에서 구부리고 맨땅에서 국을 떠먹던 난민처럼 내일 새벽 일찍 나가 눈길을 걸어 밥을 벌어야 하는 발처럼 허수경 / 냉동 새우 (허수경, 가기 ..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