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혁 「38」
나는 너를 속되게 이르는 말. 방법을 모르니 인생은 영 재미가 없다.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입 맞추던 일이나, 낯선 연립주택 불 꺼진 계단에 나란히 앉아, 미성년처럼 서로를 더듬던 일만 생각난다. 사실상 네가 관내분만한 슬픔이 이만큼이나 자랐다. 그리고 나의 활유 속에서 꽤 유복한 생을 누린다. 시인은 출구가 없는 미로를 그려서는 안 된다. 절망이라는 진부한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서, 절망할 수도 없었다. 나는 심각한 정서 학대를 당했지만, 전혀 재밌지 않은 농담에도 아주 재밌다는 듯 실감 나게 웃어 줄 수 있다. 박민혁,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파란, 2021
2021.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