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2020. 7. 3. 21:09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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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밤에는 낮을 생각했다
형광등에 들어가 죽은 나방을 생각했다
까무룩 까마득한 삶
셀 수 없는 0 앞에서 우리
대각선으로 누워 식탁에 버려진 아귀의 시체를 센다
삭아 가는 아귀의 눈알을 판다 우리는 저녁으로 아귀가 저지른 잘잘못을 울궈 먹었다 벙긋 벌리고 헤집고
닫는다 나는
곰팡이가 핀 아귀찜의 여린 살을 발라 먹는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귀를 발라 내게 입힌다 나는 가방도 되고 통장도 되고 남편도
된다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서야 내 손을 잡는 엄마
남기지 마 이런 건 가시까지 씹어 먹는 거야 엄마는 내 입을 벌리고 젖을 물렸다 엄마는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입안 가득 우유를 쏟고 우유가 묻은 팬티를 입고 우유가 묻은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삼키지 못해 둥둥 떠다니는 내
혀
두루마리 휴지처럼 흐느끼는 엄마
엄마와
숟가락에 넘치는 아귀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밤이면 낮을 생각했다
우리는 식탁을 뒤로 걸었다
낯선 곳에 있으면 다정해졌다
이소호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이소호, 캣콜링,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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