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인 / 복잡한 일
2020. 11. 18. 14:00ㆍ同僚愛/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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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 복잡한 일
너는 어느 외국 작가의 출생 연도를 잘못 표기했다는 이유로 죽고 싶다고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나는 일이 힘들어서 버는 돈이 적어서 집이 좁아서 책 둘 곳이 없어서 요리를 하면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혼자 살아서 문득 외로워져서 어디야 뭐 해 묻는 네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죽는 게 무서워서
깊은 잠에 빠졌다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내가 아무도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사무 의자에 앉아 원고 뭉치를 뒤적였다
열여덟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현장에선 매캐한 냄새가 났고 출입구 곳곳에 혈흔이 발견됐다
대출이자와 신용카드 대금 각종 공과금 외에도 마땅한 도리 책임 그리고
아득해지는 삶
좌변기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네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가리킨 건 바퀴벌레였다 그것은 바로 서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시뻘건 곰팡이가 타일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었다 창문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겨우 벽 하나 두고 삶과 죽음이 나뉘는구나 어렴풋이 누군가 손을 흔들고
누가 말리지 않았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죽은 이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남을 놀래키고 까르르 웃을까
강가를 걸을 때마다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최지인 / 복잡한 일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아침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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