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5. 19:37ㆍ同僚愛/박민혁
슬픔을 경제적으로 쓰는 일에 골몰하느라 몇 계절을 보냈다.
나를 위탁할 곳이 없는 날에는 너무 긴 산책을 떠난다. 목줄을 채운 생각이 지난날을 향해 짖는 것하며, 배변하는 것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건 거의 사랑에 가까웠지만, 결코 사랑은 아니었다는 식의 문장을 떠올려 본다. 모든 불행은 당신과 나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온다.
병구완이라도 하듯 아침과 저녁은 교대로 나를 찾아왔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좋은 냄새가 나는 아기를 안아 주고, 도닥여 준다. 아기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인생이 아니라 기어코 비극적이려는, 고삐 풀린 그것을 길들이는, 인간이다.
집에 놀러 온 신은 내 일기를 들춰보다가, "신이란 신은 죄다 불량품인지, 뭘 가지고 놀든 작동이 잘 안 돼서"라는 구절을 보고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나 그쪽이 인생에 관여하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시는 시일 뿐이라고.
친구는 집을 샀다고 했다. 나는 아직 내 명의로 된 단어 하나 갖지 못했다.
폴리아모리를 알게 된 뒤로는 사랑 같은 거, 시시해져 버렸다. 통념 안에서 목숨 거는 일이 죄다 촌스러워졌다.
나를 위협하는 사람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꿈 밖으로 나온다.
당신이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작고 둥그런 불가항력을 입안에 넣고 굴리며, 잠시 슬퍼졌다. 오래 만나야만 가질 수 있는 슬픔이 있고, 그 슬픔 하나를 빚은 것은 우리의 기쁨이다. 그리움에 녹이 슬었다.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개처럼 취할 거다. 꼬인 인생은 꼬인 혀로 말해야 하니까.
나는 왜 이리 매사에 시적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박민혁,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파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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