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2021. 6. 18. 15:19同僚愛/서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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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내가 나온다

생선을 바르다 말고 본다 이 무대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할 댄스 가수 얼굴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술 취한 자들의 노래만큼 엉망이었지 흥얼거리다 사라질 이름인데 너무 오래 쓴 거야 도려주긴 그렇고 버리는 것이지

나도 잃어버린 것을 주워다 썼으니까

코러스 없이는 노래를 못해요 무반주는 아주 곤란해요 악보 볼 줄 몰라요 춤은 자신 있어 함성 질러주면 노래 열심히 안 해도 될 텐데

무거운 가발을 벗으면서 묻기를, 시작하는 게 두려워? 끝내는 건? 남겨진 질문에 흔들리는 귀걸이의 큐빅으로 대신 말한다

잘 모르겠어 모르는 게 많아 신비로울 줄 알았던 텅 빈 해골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고 내장까지 꽉 찬 헛기침으로 구름을 걷고

내가 누군가의 기분이 될 수 있으리라 당신의 흥미를 비틀거리게 하리라

하지만 난 신의 오르골이 되었지 이쯤 해둘까 끝나지 않는 인터뷰 말미에는 말하게 될 것

무대를 떠나겠다고, 내가 남긴 노래 내가 남긴 말, 나의 춤보다 먼저 늙어버릴 육신!

질 좋은 무대의상이 있었지 출처도 모를 협찬이었지만 전 재산을 바쳐 그것을 걸쳐 입고 마지막 무대에 올라선다

밥상 밑에서 맨발을 긁적거리며 하얀 생선살을 가지런하게 바르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네 베스트 앨범에선 아직 분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 이가 깨어나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from Paul Zoetemeijer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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