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7. 16:10ㆍ同僚愛/정다연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커피향이 고소하다 불에 볶은 과테말라, 케냐, 오악사카산 원두
수익의 일부는 정당하게 현지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돌아간다
많이 살수록 할인율은 높아진다 최저가의 최저가 에코백은 덤이다
담배 있어요? 역 광장을 돌며 담배를 구걸하던 남자가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 그러나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한국이 싫다며
외국을 전전하던 친구는 이제 세상에서 서울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한다
돈만 있다면
이렇게 편한 나라가 어딨어?
멕시코시티에서 총에 맞아 죽은 아이를 봤어 모르몬교 백인을 향한 증오범죄였는데 해변에서 먹었던 토르티야는 정말 매웠지 실컷 떠들다가 친구는 기념품으로 샀다는 핸드메이드 에코백을 건넨다 착한 소비는 가난한 지역사회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못에 걸리면 그대로 쭉 찢길 것 같은,
급식소에 셔터가 내려간다 배웅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길을 간다 또다시 만나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작은 가능성도 남기지 않는다
걷는 거리가 익숙하다 다 아는 곳 같다
각 노선이 막힘없이 연결된다 이렇게 늦은 밤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거야 사거리를 지나다 총 맞을 일도 없잖아? 살인율이 가장 높다는 멕시코, 멕시코를 곱씹다가
스스로를 죽이는 나라와 타인을 쉽게 죽이는 나라 중 어느 쪽이 좀더 나은 곳일까 생각하다가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했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에코백을 버렸다 원하지 않는 물건을 처치하는 데 돈을 쓰는 건 무척 아까운 일이다 게다가
친환경 소재 에코백은 잘 썩어 어쩌면 좋은 비료가 될 수 있고
질 좋은 비료는 비옥한 토양이 되어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빈 열차가 플랫폼을 빠르게 통과한다 달리는 열차의 소음은 시원하게 갈리는 원두 소리 같구나
쇠 타는 냄새
불합리한 구조조정에 항의하던 사람이 서울 한복판에서 칼을 휘둘렀으나 부상자는 0, 사망자는 한명뿐이었다고 한다
정다연,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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