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 「나는 좀 슬픈가 봐, 갈대가 머리칼 푼 모습만 눈에 들어와」
정량천을 걷는다 내 걸음은 가난한 곳으로 흐르고 줄지어선 갈대가 무심한 표정으로 천변에 널려있다 나도 갈대가 되어 천변 어느 곳에 주저앉아버릴까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바람 부는 곳으로 따라 흔들리게 될까 이생에서 잠시 머물다 갈 일을 잊고 하루를 하루 같이 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세상 소용없는 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란 걸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꼭 잡아야 하는 것을 또 생각하는 것인데 부질없는 것들과 집착하는 것들을 눌러 앉히는 저녁 밟는 곳마다 땅이 질퍽이는데 천변을 따라가면 내 아이 머무는 너른 풀밭이 나올 테고 갈대를 머리에 꽂은 아이가 이쪽을 보고 있을 테고 저 혼자 가을이 되고 있을 아이가 못내 서러워 수첩에 적힌 지도를 펼친다 그곳은 아직 내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 스산한 바람이 계절의 행방..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