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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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대관람차
유계영 / 대관람차 가방 속에 하나 이상의 거울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줄곧 웅크렸던 귀가 툭 풀어질 것 같다 귓불에 살점이 붙던 시간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바람이 태어난다고 믿게 되는 장소 부드러운 거절을 위해 빼곡이 심어놓은 나무들 세상의 모든 미로는 인간의 귀를 참조했다 누구도 자신의 귀를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뭐라고? 미로 속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이 메아리와 같이 희미해지네 거울의 내부에는 가방의 내부가 있고 바람의 내부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매달린다는 것은 동심원의 가장 먼 주름으로 사는 것 막다른 벽이라 생각하세요 결국 빠져나갈 거라면 최대한 긴 과정을 출구 앞에 펼쳐놓을 것입니다 귓속에 이름이 쌓여 있을 것만 같다 누군가 내 이름을..
2020.02.28 -
강성은 / 12월
강성은 / 12월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