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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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지 「기침」
1 앉아 무릎을 감싸면 팔 안쪽에서 웃자라던 차가운 언어들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삼켜야 하는 기침처럼 서둘러 지운 다짐들을 혼자 손끝으로 몰래 닦아보면 따뜻한 비가 우리의 온도와 맞는다는 인사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고 사람들이 실은 아름다운 것을 늘 사랑했다는 기침 같은 고백일 수 있겠다 단지 어느 너머에 발 디딘 날 2 가장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누가 봤을까봐 세계를 기웃 보며 서둘러 기분을 잃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한 번쯤 말해줘야 할 내가 많은 꿈에 있다 그늘에서 마르지 못한 기분이 기침으로 나왔다고 고백해도 좋다면 그런 낮에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웃는 아이의 얼굴이 신 같았다 김향지,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 문학동네, 2021
2021.06.06 -
기형도 / 성탄목 ― 겨울 판화 3
기형도 / 성탄목 ― 겨울 판화 3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름답다 그것뿐이다 오늘은 왜 자꾸만 기침이 날까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 방 안이 너무 어두워 한 달 내내 숲에 눈이 퍼부었던 저 달력은 어찌나 참을성이 많았던지 바로 뒤의 바람벽을 자꾸 잊곤 했어 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이야, 난 참으려 애썼어 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네 그래, 고향에 가고 싶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 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 그 옆에 은박지 같은 예배당이 있었지 틀린 기억이어도 좋아 멀고먼 길 한가운데 알아? 얼음 가루 꽉 찬 바다야 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어머니는 나보고 소다 가루를 좀 먹으라셔 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 방금 문을 연 촛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2020.12.27 -
이장욱 / 피사체
이장욱 / 피사체 우리는 고정되었다. 우리는 분별없이 떠들다가 김치, 라고 외치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책임감이 점점 강해졌다.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우리의 배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웃고 있는 남자는 웃지 않은 여자를 사랑했지. 갈색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곧 죽었어. 둘째 줄의 콧수염이 문상을 갔네.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동안, 그녀의 선언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 모자를 쓴 남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는 중. 당신이 이쪽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아, 거기! 뒤에 가려진 사람! 얼굴이 안보여. 당신의 이야기도. 터지는 기침을 막으려고 당신은 얼굴을 찌푸렸다. 김치! 라고 외치며 우리가 일제히 정면을 바라보..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