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2)
-
김지민 / 전향
김지민 / 전향 퇴직 후 아버지는 숲 해설가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 뒤편의 야산에 올랐다 야야 솔방울은 씨앗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너도 얼른 시집을 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나는 콱 불을 지르고 싶었다 젊은 애가 왜 허구한 날 방에만 누워 있느냐 아버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굽어보다 솔방울 같은 말을 툭 떨구었다 아버지 나는요 내가 도무지 젊은 것 같지가 않아요 내게 남은 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 몫의 씨앗을 다 털어낸 게 아닐까요 천둥이 치자 아버지와 나는 앞 다투어 산에 올랐다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숲의 심지가 젖어들었다 숲에 관해서라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았다 나무의 잎사귀가 저마..
2020.06.12 -
김지민 / 머나먼 교전
김지민 / 머나먼 교전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화먼 속에 건물 잔해가 나뒹군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 미처 피하지 못해 연기 속에 파묻힌 사람들이 있다 들것에 실려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 붉은 모자이크를 덮고 일렬로 누운 사람들이 있다 새까만 발바닥과 발바닥 입안에서 고구마가 굴러다닌다 당장의 고구마 나에게 닥친 고구마 입안에서 벌어지는 고구마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게 달려드는 고구마 어찌할 도리 없이 달고 뜨거운 고구마 정말 큰일이야 어쩌면 좋아 나는 고구마를 피해 달아나다가 고구마를 살살 달래보다가 고구마를 이로 잘게 부수면 불타는 시가지를 바라보던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며 손을 뻗는다 잡아달라는 듯이 잡아보라는 듯이 화면은 좌우..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