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 / 전향

2020. 6. 12. 19:48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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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 전향

퇴직 후 아버지는 숲 해설가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 뒤편의 야산에 올랐다

 

야야 솔방울은 씨앗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너도 얼른 시집을 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나는 콱 불을 지르고 싶었다

 

젊은 애가 왜 허구한 날 방에만 누워 있느냐 아버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굽어보다 솔방울 같은 말을 툭 떨구었다

 

아버지 나는요 내가 도무지 젊은 것 같지가 않아요 내게 남은 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 몫의 씨앗을 다 털어낸 게 아닐까요

 

천둥이 치자 아버지와 나는 앞 다투어 산에 올랐다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숲의 심지가 젖어들었다

 

숲에 관해서라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았다 나무의 잎사귀가 저마다 모양이 다른 이유 소나무 가지에 둥지와도 같은 커다란 혹이 맺히는 이유 그러나 사람이 기꺼이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드는 이유에 대해선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야야 그거 아느냐 나무도 번개를 맞으면 결국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는 거

 

바닥이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사는 것이 시시해졌다

 

 

 

김지민 / 전향

(현대문학 신인추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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