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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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기일」
가끔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불 꺼진 쇼윈도 속에서 나는 조금 놀란 표정 점집에서 십만 원 주고 결혼 날짜를 받아온 사람이나 금요일 새벽 천국에 대해 무서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목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자연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일처럼 유일하고 소형 비행기처럼 삐뚤빼뚤한 내가 수없이 비상구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과 그 모든 것을 몰랐다는 듯 우연으로 꾸미려는 계획 또한 죽는 것도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 오직 자연스러운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럽지만은 않고 나는 결코 인간다운 걸음걸이로 걷지 않으며 하얗고 길게 펼쳐진 계단의 끝이 팡파레와 천사들의 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험지 귀퉁이를 하나씩 찢었다 새가 없는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깃털이 육교 위로 흩날렸..
2021.04.16 -
조원효 / 불청객들
조원효 / 불청객들 애인은 자주 손목을 그었다 고독한 여왕처럼 아침이면 나와 식탁에 마주 앉고. 철제 갑옷도 맞춰 입고. 빳빳하게 굳은 손목으로 체스를 두었다. 체스 판이 입을 벌린다. 왜 그렇게 혀를 날름거리니. 소매 틈으로 피가 흐르니까. 벽난로가 불타오른다. 창문에 부딪힌 새 떼가 자꾸 같은 패턴으로 죽는다 문 앞에 손님이 벨을 눌렀다. 경찰이야. 잘 부탁해. 나는 바게트 빵에 대해 생각하고 영국의 궁전에 대해 말할 줄 알아. 나쁜 피를 흘렸지만 구체성은 없어. 그녀의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체크 메이트 해가 지면 체스 판이 작아진다. 화분에 놓인 돌이 간신히 호흡한다. 네가 비숍을 움직일 걸 알아.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내가 작은 나라의 왕이라고 말했다. 몸을 일으켜..
2020.12.12 -
강성은 / 나의 셔틀콕
강성은 / 나의 셔틀콕 아버지와 나는 배드민턴을 쳤다 셔틀콕은 도무지 공 같지 않고 깃털들은 얇은 종이처럼 하늘거리며 천천히 날았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찡그린 채로 손을 이마에 대고 지루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배드민턴 놀이는 셔틀콕의 비행은 슬로우모션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라켓을 높이 쳐든 아버지의 몸짓도 받으려는 나의 몸짓도 너무나 더디게 흘러갔다 나는 햇빛 사이로 비행하는 셔틀콕의 움직임을 반짝임을 시시각각 느끼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하얀 체육복을 입은 여자아이 공중에 한참 멈춰 있던 아버지의 라켓이 순식간에 내리치자 셔틀콕은 저편 숲 속으로 빠르게 휙 날아가버렸다 나는 촐랑거리는 강아지처럼 깡충껑충 뛰어..
2020.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