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없고네분위기만남았어(2)
-
김하늘 『샴토마토』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내가 유일하게 토마토를 먹지 못해서) 유독 눈에 띄었던 시집 『샴토마토』. 당시 잘 알지 못했던 파란 시선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시인 '김하늘'. 성별을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장들 속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퇴폐미가 과즙처럼 뚝뚝 묻어나길래, 나는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읽었었다. 이후 곧장 모바일로 주문까지. 이건 꼭 내 서재에 꽂혀 있어야만 해 하며. 내가 진정 쓰려고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언젠가 퇴폐적이라는 말을 참 사랑했는데.이따금 『샴토마토』를 읽으면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날은 내게 너무 강렬히 배어 있다.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안부도 건넬 수 있는 사이. 뭐랄까 나를 대변해 주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과 이야기 속에..
2021.01.10 -
김하늘 / 너는 없고 네 분위기만 남았어
김하늘 / 너는 없고 네 분위기만 남았어 너는 없고 네 분위기만 남았어 둘이었던 골방에선 늘 오래된 알약 냄새가 나 2인용 빨간 소파에 달라붙어 앉아 수플레를 먹고, 에이드도 마셨지 우리의 혈액은 아직 따뜻했고, 새벽달이 뜨는 날이면 서로의 몸에 오줌을 누는 것으로 영역을 확인했어 아, 얼마나 로맨틱한지 몰라 너는 없고 네 분위기만 남았어 침대는 좁고, 가진 건 5달러뿐이었지만 아무렇게나 뒹굴고 혀를 섞었지 브룩클린으로 떠나는 표를 끊던 날 너는 제일 야한 팬티를 챙기며 이걸 입고 반하지 않는다면 그건 무효야, 끼죽끼죽 웃었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걸 예감하듯 우리는 우리만의 건기를 견뎠으나, 마침내 네 분위기만 남았어 네 눈물은 짜지 않았고, 총천연색으로 빛났고…… 기억..
202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