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누드비치」
누드비치라는 말은 기분이 좋다 먼 나라 사람 이름 같다 귀르비치 말코비치 이바노비치 나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달리는 말 위의 소나기 같고 골목 끝 신혼집에서 불어오는 콧노래 같고 그곳에선 밤이면 까르르 한 쌍의 깃털베개도 날아다닌다 말을 달려도 말을 멈춰도 소나기는 내린다 베개 솔기가 터지도록 찢어지게 웃다가 찢어지는 연인과 찢어지게 가난해서 찢어지는 가족과 찢어지게 낡아서 찢어지는 책들과 속수무책이 쌓여서 읽을 수 없는 날이 오고 창 밖의 창 밖의 창 밖의 별을 더듬으며 과거를 알고 싶어요? 나체로 말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그런데 왜 양말은 신고 있죠? 그것이 이름표라는 듯이 아직 벗을 게 더 남았다는 듯이 국경을 벗으면 세계는 하나라는 듯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얼기설..
202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