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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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에코백」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커피향이 고소하다 불에 볶은 과테말라, 케냐, 오악사카산 원두 수익의 일부는 정당하게 현지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돌아간다 많이 살수록 할인율은 높아진다 최저가의 최저가 에코백은 덤이다 담배 있어요? 역 광장을 돌며 담배를 구걸하던 남자가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 그러나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한국이 싫다며 외국을 전전하던 친구는 이제 세상에서 서울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한다 돈만 있다면 이렇게 편한 나라가 어딨어? 멕시코시티에서 총에 맞아 죽은 아이를 봤어 모르몬교 백인을 향한 증오범죄였는데 해변에서 먹었던 토르티야는 정말 매웠지 실컷 떠들다가 친구는 기념품으로 샀다는 핸드메이드 에코백을 건넨다 착한 소비는 가난한 ..
2021.11.07 -
성윤석 / 티타늄 Ti
성윤석 / 티타늄 Ti 녀석은.... 히키코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일 년 동안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숫돌로 갈면 혼자서 흰 불꽃을 내는 저 금속처럼 녀석은 외톨이로 살았다 음... 애니에서......... 가상현실........... VR에만 빠져 있어 일본 가서................. 혼자 살려면........ 슈퍼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거기서는........ 잘 할 수 있겠다고. 다른 언어로는........... 잘 살 수 있다고. 밖에 나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2020.07.30 -
박성우 / 건망증
박성우 / 건망증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