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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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현실적인 잠」
당신의 잠이 내게로 왔다 물웅덩이가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서 이유를 몰라서 괜찮은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당신의 잠은 치와와처럼 짖는 밤으로부터 멀어지려고 꿈을 다 썼다 풀 냄새를 맡으러 간다고 쓰인 쪽지가 있다 당신은 차가운 물을 단숨에 마시지 못한다 당신은 마카롱을 오래 물고 있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다 그게 아무래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철새들이 방향을 바꾸고 하늘이 빈다 그 밑에서 나는 항상 더 밑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다 지하실에선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작은 동물이 더 재빠르고 무서워진다 당신의 잠은 자꾸 내게로 온다 당신이 당신의 잠 앞에서 머뭇거리기 때문에 당신이 혼자 글을 쓰고 그것을 혼자 읽기 때문에 나는 소스라치고 그 소스라침을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2021.09.03 -
장수양 / 창세기
장수양 / 창세기 서리가 어린 창은 사람의 얼굴 같다. 매일 들여다보아도 하얗게 질려 있다. 갈라진 곳으로 호흡을 나눈다. 나의 얼굴도 희어진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아이가 도로를 지나간다. 혼자. 사라진 자리가 희다. 너무 많은 길이 다른 길을 찌르고 있어. 생채기에서 빠져 나온 것 같아. 아무렇게나 흘러. 일기예보에 나온 적 없는 날씨를 모두가 아는 것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이 자꾸만 서로 부딪친다. 여태 이상한 줄 몰랐다. 숨이 자욱하다. 여기에 없는 걸까. 추위가 되어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고 있는 걸까. 눈을 감으면 천국은 하렘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데도 한 사람을 위해서만 있는 것 같은. 빠져나간 모두는 어디로 가고 있지? 보이지 않을 ..
2020.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