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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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
2022.01.14 -
박지일 / 세잔과 용석
박지일 / 세잔과 용석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