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일 / 세잔과 용석
2020. 3. 14. 09:46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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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일 / 세잔과 용석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박지일 / 세잔과 용석
(경향신문 신춘문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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