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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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커트 피스」
흐린 날씨다 철교를 따라 걸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연이은 불행 찢기고 찢긴 삶은 고통이었지만 예술은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용기로 삼고 싶지 않다 등에 한가득 짐을 진 사람이 저 앞을 걸어간다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 뉴욕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반품된 커다란 작품을 들고 40블록을 걸었다 어디서 네 작품을 볼 수 있니? 오랜만에 만난 이가 전하는 다정한 안부 시집은 구천원, 원한다면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어 관람료는 없고 공짜야 말하고 길을 나서는 나보다 앞서간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가 계속해서 가고 있다는 믿음이 천천히 머리칼을 적신다 안개처럼 도시를 산책하던 아..
2021.11.07 -
양안다 / 안녕 그러나 천사는
양안다 / 안녕 그러나 천사는 언젠가 인간은 천사였던 적이 있지 않을까. 너의 날개 뼈를 만지면서. 폭약이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드는 새벽. 너는 붓을 적시며 말한다. 악마도, 이 세상의 조류도 모두 날개 뼈를 갖고 있다고. 종이가 되길 원한 나무는 너로 인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데. 어느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신의 눈동자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짐승의 두 눈일지도. 전생에 우리는 꽃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쓸어 모으면서. 아니. 나는 물이었을 거야. 물을 만질 때마다 불안이 전부 씻겨 내려가거든. 폭약이 우리 불안을 뒤흔드는 새벽. 네가 그린 꽃은 호수에서 목을 적시고 있었다. 짐승의 등 위로 나뭇잎이 돋아나고. 인간은 누군가를 ..
20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