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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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 방황하는 마틸다
김희준 / 방황하는 마틸다 첫 키스는 열 살, 사과가 목에 걸려 울었을 때 그녀가 혀로 조각을 꺼내주면서야 그게 아니라면 알코올중독자 친구 아버지 무릎에서였나 주인이 없는 책상과 의자는 어떻게 될까 방과후에 남겨진 책상이 오래 말을 하는 것을 보려고 기다렸어 아무도 찾지 않는 의자가 부식된 바람이 되는 것도 보았지 며칠 뒤 눈두덩에 멍든 채 학교에 왔어 전봇대에 부딪혔다고 웃는 개의 말을 믿어줘야 했지 집 나왔어 문구점에서 눈치를 보다가 은행놀이 세트의 가짜 돈을 훔치고 주인한테 머리를 맞았지 달리기가 빠른 아킬레스건을 훔쳐보았어 그해, 빵집에서 새어나왔던 여름 말이야 복숭아 타르트와 사과파이로 구워져야 하는 제철 과일에 대해 잡종으로 태어나게 해준 너의 아버지와 도망친 어머니의 이종교배를..
2020.11.21 -
차도하 / 침착하게 사랑하기
차도하 / 침착하게 사랑하기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