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 / 방황하는 마틸다

2020. 11. 21. 01:14同僚愛/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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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 방황하는 마틸다

 

 

 

첫 키스는 열 살, 사과가 목에 걸려 울었을 때 그녀가 혀로 조각을 꺼내주면서야 그게 아니라면 알코올중독자 친구 아버지 무릎에서였나

주인이 없는 책상과 의자는 어떻게 될까 방과후에 남겨진 책상이 오래 말을 하는 것을 보려고 기다렸어 아무도 찾지 않는 의자가 부식된 바람이 되는 것도 보았지

며칠 뒤 눈두덩에 멍든 채 학교에 왔어 전봇대에 부딪혔다고 웃는 개의 말을 믿어줘야 했지

집 나왔어 문구점에서 눈치를 보다가 은행놀이 세트의 가짜 돈을 훔치고 주인한테 머리를 맞았지 달리기가 빠른 아킬레스건을 훔쳐보았어

그해, 빵집에서 새어나왔던 여름 말이야 복숭아 타르트와 사과파이로 구워져야 하는 제철 과일에 대해 잡종으로 태어나게 해준 너의 아버지와 도망친 어머니의 이종교배를 말하느라 아플 때까지 턱을 벌렸던 것 같아

우리 사이에 당도하지 못한 혀가 있고 오거리에서 밤을 새우던 날은 과도에 밀린 과육 같았지

내가 껍질이어서 벗겨진 너는 거리를 헤맸지 가출팸은 신고식으로 두들겨 맞아야 잠을 잘 수 있다며? 단발이 어울려서 고독한 마틸다, 누가 그런 밤을 사게 했니

바구니 아래에 있는 과일은 언제나 파과 파과 썩어 있어 우리가 먹어야 하는 건 흉터밖에 없는데 배태된 상징은 어디로 갔을까 네가 항공 점퍼를 입을 수밖에 없던 이유 같은

어서 짐 싸 마틸다, 내가 비행의 지름길을 알고 있거든

 

 

 

김희준 / 방황하는 마틸다

(김희준,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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