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2)
-
문보영 / 불면
문보영 / 불면 누워서 나는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내 옆의 새벽 2시는 회색 담요를 말고 먼저 잠들었다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내 발이 다른 이의 발이었으면 좋겠다 애인은 내 죽음 앞에서도 참 건강했는데 나는 내 옆얼굴이 기대서 잠을 청한다 옆얼굴을 베고 잠을 잔다 꿈속에서도 수년에 걸쳐 감기에 걸렸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발바닥 위에 서 있었다 발바닥을 꾹 누르며 그만큼의 바닥 위에서 가로등처럼 휘어지며 이불을 덮어도 집요하게 밝아 오는 아침이 있어서 잠이 오면 부탄가스를 흡입하듯 옆모습이 누군가의 옆모습을 빨아들이다가 여전히 누군가 죽었다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정갈하게 문보영 / 불면 (문보영, 책기둥, 민음사, 2017) https://www.instagra..
2020.03.07 -
문보영 / 배틀그라운드 ― 사후세계에서 놀기
문보영 / 배틀그라운드 ― 사후세계에서 놀기 도망가는 자는 사방을 닫고 자기 자신을 즐긴다. 즐기다 들키는 것까지 포함해서 즐긴다. 사망 후 데스캠*으로 본다. 날 죽인 사람의 시점으로 죽기 직전의 나를 보는 건 유익하다. 나는 무너진 건물 창턱에 앉아 있었구나. 그것도 도망이라고. 왜 죽였는지는 묻지 말고 어떻게 죽였는지만 배우면 된다. 저렇게 먼데 죽였다고? 배율의 문제. 너무 멀잖아. 부조리해. 핵쟁이의 짓인가. 나는 도망치고 있구나. 문을 놔두고 창문을 타고 드나들면 열심히 사는 기분이 들었거든. 원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다른 데 봤다. 연약함을 처리해야 할 때. 멀리 있는 사람은 아름답고 밋밋해. 밤은 기장이 길고 나는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므로 잠시 일그러진다. 먼 거리에 ..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