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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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리 「저녁의 대관람차」
이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한 사람의 눈동자를 완성할 수 있을까 야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도시의 불빛을 보러 온 것인지 도시가 어둠에 잠긴 풍경을 보러 온 것인지 자물쇠가 반짝였고 비밀이 풀리는 순간을 함께한다면 어떤 기억은 떠오르다가 투명한 바늘에 찔린 것처럼 순식간에 터진다 층계를 밟는다 미끄러운 바닥조차 없는 빛을 잡을 수도 없는 공중은 평평하고 약간 따뜻하다 아직 바다도 꼭대기는 아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 도달하려는 노력 없이 그런 기분만을 가지면 된다 이렇게 높이 올라와도 놀이터에서 비눗방울을 만드는 아이들이 보인다 머리카락에 벚꽃 잎이 붙은 줄도 모르고 비눗방울 속에 들어 있는 무지개를 잡으려고 폴짝 뛰어오르다가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기..
2021.02.10 -
안희연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안희연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다녀갔어." 그렇게 시작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누가 언제랄 것도 없이 덩그러니 다녀갔다는 말은 흰 종이 위에 물방울처럼 놓여 있었고 건드리면 톡 터질 것처럼 흔들렸다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일기예보를 통해 날씨를 예견하듯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며 문을 닫았다 탁자 위엔 읽다 만 책이 놓여 있고 내가 믿을 것은 차라리 이쪽이라고 여겼다 책을 믿는다니, 나는 피식 웃으며 독서를 이어갔다 "수잔은 십 년도 더 된 아침 햇살을 떠올리며 잠시 울었다." 나는 십 년도 더 된 햇살의 촉감을 상상하느라 손끝이 창백해지는 줄도 모르고 잠시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생각하느라 방..
2020.07.05 -
임솔아 / 모래
임솔아 / 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니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