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혁 「그 후」
슬픔을 경제적으로 쓰는 일에 골몰하느라 몇 계절을 보냈다. 나를 위탁할 곳이 없는 날에는 너무 긴 산책을 떠난다. 목줄을 채운 생각이 지난날을 향해 짖는 것하며, 배변하는 것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건 거의 사랑에 가까웠지만, 결코 사랑은 아니었다는 식의 문장을 떠올려 본다. 모든 불행은 당신과 나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온다. 병구완이라도 하듯 아침과 저녁은 교대로 나를 찾아왔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좋은 냄새가 나는 아기를 안아 주고, 도닥여 준다. 아기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인생이 아니라 기어코 비극적이려는, 고삐 풀린 그것을 길들이는, 인간이다. 집에 놀러 온 신은 내 일기를 들춰보다가, "신이란 신은 죄다 불량품인지, 뭘 가지고 놀든 작동이 잘..
2021.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