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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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
2022.01.14 -
송종규 「아이스크림과 택배」
그는 한 때 미루나무였을 것이다 미루나무는 한 시절 구름이었을 것이다 구름은 한 때 함성이었을 것이다 함성은 수많은 입술들이 쏘아올린 초록,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미루나무 옆을 지나가고 미루나무 위로 한 무리의 구름이 지나가고 온갖 홀씨들이 바람에 나부낄 때 듣는다 함성 그는 한 때 공원의 의자였을 것이다 의자는 한 시절 공중에 매달린 그믐밤의 달이었을 것이다 달빛은 파문 달빛은 소요 달빛은 폐허의 무심한 듯 쏟아져 내리는 모래의 알갱이들, 당신이 안전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공원의 벤치 곁을 지나갈 때 아이스크림이 손가락처럼 녹아내릴 때,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봉투를 뜯기도 전에 계단이 차오른다 막 도착한, 택배 2019 웹진..
202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