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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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 부서진 사월*
신철규 / 부서진 사월* 시계첨에 매달린 인간들이 땅을 보며 걷는다 어젯밤에 썼던 콘돔은 튼튼한 것이었을까 일본 원전을 덮어씌운 콘크리트는 안전한 것일까 어제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이 오늘은 당신을 모른 체하고 지나간다 바닥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잠시, 괴물의 형상이 되었다가 딱딱한 혼자가 된다 빈혈에 시달리는 가로수들 나뭇잎의 뒷면에서 어둠이 뚝뚝 떨어져 나무 밑동에 고인다 저 멀리서 온통 눈물로 젖은 얼굴이 걸어온다 그의 자식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의사에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눈앞에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불행들을 손으로 걷어내려는 듯 양팔을 휘저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가 내 곁을 지나갈 때 나는 눈을 감았다 그..
2020.03.13 -
주하림 / 작별
주하림 / 작별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주하..
202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