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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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 평범한 일생
김이듬 / 평범한 일생 나무에게서 나무 냄새가 난다 유칼립투스와 내가 닿았다 나는 작은 숲을 가졌고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뾰족하고 부드러운 나무는 자기가 공기를 바꾸는 줄 몰랐다 대들보나 재목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꿈은 한층 더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일까 꽃들이 졌다 이제 층층나무에게서 층층나무 냄새가 나고 나무는 모든 잎사귀로 소리와 향기를 발산한다 가장 무성하고 푸른 시절에 관료들이 왔다 토목공사 현장으로 죽음의 강으로 그루터기를 베어 갔다 전문가란 이들이 숲을 뒤지고 검열해서 오렌지 빛 바다로 군대로 먼 타국으로 싣고 갔다 나는 소멸할 것처럼 작은 숲을 가졌고 내 발목을 심은 곳에 친구의 발목도 있다 너는 말했다 아이도 낳아 보고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어 불타거나 베..
2020.06.25 -
최현우 / 천국
최현우 / 천국 하늘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거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고 있었다 최현우 / 천국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18 -
황인찬 / 무화과 숲
황인찬 /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 무화과 숲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8 -
하재연 / 양양
하재연 / 양양 물고기를 잡아야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네 손바닥에 놓인 것이 조용했다. 해마도 물고기냐고 물었다. 해마는 말을 닮은 물고기라고 했다. 눈 뜬 해마는 식물 같아,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지. 너는 해마가 약으로도 쓰인다고 멸종 위기라고 물에 사는 고기들이 다 고기인 건 아니라고. 다음 날이 도착했는데 죽은 해마와 나는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재연 / 양양 (하재연, 우주적인 안녕, 문학과지성사,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