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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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같은 부대 동기들」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들.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서 운동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난 이런 죄를 고백했는데. 넌 무슨 죄를 고백했니? 너한텐 신부님이 뭐라 그랬어?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놀았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 고백할 게 많아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웃고 까부는 건 다 좋은데. 성사를 장난으로 생각하진 마. 우리가 방금 나눈 대화도 다음 성사 때 고백해야 돼. 어렸을 때 세례를 받은 동기가 조심스럽게 충고를 하고. 역시 독실한 종교인은 남다르구나. 너는 오늘 무슨 죄를 고백했는데? 우리는 조금 빈정거렸다. 나는 생각으..
2021.06.06 -
나선미 / 오늘도
나선미 / 오늘도 오늘은 웬일인지 네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우습게도 네 생각을 했다 나선미 / 오늘도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연지출판사,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1.12 -
황인찬 / 종로일가
황인찬 / 종로일가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 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보았다 황인찬 / 종로일가 (황인찬,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7.04 -
김재훈 / 월식
김재훈 / 월식 너는 너의 바깥에 서 있었다 손에 쥔 모래를 표정 없이 떨어뜨리는 소녀가 생각 없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주먹 속의 모래가 모두 빠져나간 뒤에 문득 놀라 빈 손바닥을 펼쳐 볼 때 처음 들른 여인숙 방의 형광등 스위치를 더듬듯이 너는 내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 온 거니 손이 차구나 김재훈 / 월식 (미등록, 문학동네 2011.겨울, 문학동네, 201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5.02 -
이덕규 / 이제 막 눈이 녹으려 할 때
이덕규 / 이제 막 눈이 녹으려 할 때 무장무장 때로 몰려 내려오는 함박눈 송이송이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작정하고 뛰어내려서 한빛이다 아니다, 수많은 눈송이들 하나하나가 다 다른 생각으로 뛰어내려서 한빛이다 분분이 한빛이다 밤 새 내린 고만고만한 생각들이 서로 어깨 팔 다리 걸고 부둥켜안은 채 골똘한 아침, 생각해보니, 딱히 살자고 내려온 건 아니었다 이덕규 / 이제 막 눈이 녹으려 할 때 (시와환상, 편집부, 이레웍스, 201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