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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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 「아이스크림과 택배」
그는 한 때 미루나무였을 것이다 미루나무는 한 시절 구름이었을 것이다 구름은 한 때 함성이었을 것이다 함성은 수많은 입술들이 쏘아올린 초록,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미루나무 옆을 지나가고 미루나무 위로 한 무리의 구름이 지나가고 온갖 홀씨들이 바람에 나부낄 때 듣는다 함성 그는 한 때 공원의 의자였을 것이다 의자는 한 시절 공중에 매달린 그믐밤의 달이었을 것이다 달빛은 파문 달빛은 소요 달빛은 폐허의 무심한 듯 쏟아져 내리는 모래의 알갱이들, 당신이 안전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공원의 벤치 곁을 지나갈 때 아이스크림이 손가락처럼 녹아내릴 때,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봉투를 뜯기도 전에 계단이 차오른다 막 도착한, 택배 2019 웹진..
2021.01.19 -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너는 그냥 꽃, 너는 그냥 글씨 너는 그냥 눈물, 너는 그냥 사마귀 모든 상식과 사건과 사실들을 의심하는 일은, 벤자민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식 너는 그냥 빗물, 너는 그냥 포오크 너는 그냥 계단, 너는 그냥 빛 벤자민은 이십구 층에 있다, 이십구 층은 아득한 섬 슬프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지만 그립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신파 같지만 그립고도 슬픈 섬, 너는 그냥 햇빛, 그냥 의자 그냥 거짓말 너는 그냥, 아득한 세월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송종규,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민음사,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