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 /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랑
정철훈 /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랑 우리에겐 식탁도 밥상도 없었다 맨바닥에 와인 한 병, 술잔 하나 치즈의 포장지를 벗기는 너의 손에서 착착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무 웃기지 않니 그게 무슨 살림이라고 너는 복잡한 사랑은 싫다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니, 곧 기나긴 겨울이 올 텐데 미친 바람이 거리를 불고 갈 텐데 너는 냉장고 문을 열고 겨울을 먼저 보여주었지 거기 어제 먹다 남은 음식들 모든 식기에 랩이 씌워져 있었다 우리에게 씌워진 이 투명한 불투명 그러므로 솔직해지자 우리에게 식탁이나 밥상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봄이 올 때까지 이 겨울의 사랑을 어찌 껴안을까 몸은 더운데 사랑의 바닥은 차갑구나 사랑아, 낙엽이 모두 떨어지기를 기다리자꾸나 그리고 기억하자 이 지난한 방 한 칸의 ..
202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