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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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바르도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류시화 / 바르도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1 달 표면 오른쪽으로 거미가 기어간다 월식의 흰 이마 쪽으로 어느 날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밤늦은 시각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흰 빗금을 그으며 산목련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거미가 달의 뒷면으로 사라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텅 비고 깊고 버려진 목소리 망각의 정원에 핀 환영의 꽃 같고 육체를 이탈한 새의 영혼 같고 얼마큼의 광기 같은 당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요? 전화는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 당신 아직도 거기 있어요? 당신 아직 거기 있어요? 2 지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매화는 피었나요 소복이 삼월의 마지막 눈도 내렸나요 지난번 가시에 찔린 상처는 아물었나요 그 꽃가지 ..
2020.07.02 -
김재훈 / 월식
김재훈 / 월식 너는 너의 바깥에 서 있었다 손에 쥔 모래를 표정 없이 떨어뜨리는 소녀가 생각 없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주먹 속의 모래가 모두 빠져나간 뒤에 문득 놀라 빈 손바닥을 펼쳐 볼 때 처음 들른 여인숙 방의 형광등 스위치를 더듬듯이 너는 내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 온 거니 손이 차구나 김재훈 / 월식 (미등록, 문학동네 2011.겨울, 문학동네, 201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