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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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임 / 감기
이용임 / 감기 바다가 검게 탄 늑골을 휘며 울고 있다 물로 목을 헹구고 맨발에 모래를 묻히며 숲으로 걸어간다 한쪽 속눈썹이 젖은 소나무들이 검록색으로 기울어 있다 한 대 맞은 거니, 너도 가지마다 말갛게 앉은 바람의 발뒤꿈치를 만지자 핏줄을 따라 파랗게 도드라지는 신열의 뿌리 밤마다 벌떡 일어나 앉는 잠의 가슴골에 흥건한 식은땀 가릉가릉 가슴께에 끓는 파도가 하얗게 몰려오고 사라지고 발가락에 젖은 모래들이 오한에 떨고 입이 비뚤어진 소나무들이 씹다 버린 연애처럼 바닥을 쓴다 모서리마다 뒤척거리며 잠시 흰 등을 보이다 어두워지는 히늘 혹으로 불거져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쿨룩 감은 눈동자를 치며 날아간다 반 뼘 비린내가 마른 풍경을 왈칵 구겨 쥐는 밤 희끗희끗한 어둠을 내려다..
2020.08.18 -
이용임 / 연애의 시간
이용임 / 연애의 시간 창문이 흰 계절이 온다 몸을 열자 동백나무 우거진 숲 당신이라는 검푸른 관자놀이를 통과하는 한 발의 총성 산산히 깨진 당신을 밟고 맨발로 당신이라는 시간을 걷는다 땀구멍마다 침투하는 당신의 쇳소리가 밤마다 내 몸을 흔든다 모가지째 뚝뚝 당신이 순교한다 나는 가장 벙글지 않은 당신을 주워 탁자 위 꽃병에 꽂는다 이미 죽은 당신의 입술이 벌어지며 그윽한 향기가 흘러나온다 시시각각 피어나며 시드는 당신이라는, 붉은, 짙은, 어지러운, 너덜너덜한 꿈의 자락을 들어 냄새를 맡으면 곧 자욱한 눈보라 으스스한 핏빛 잎들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계절 창문이 흰 계절 위에 손가락으로 당신을 쓴다 가장자리부터 얼어붙는 이름을 쓴다 이용임 / 연애의 시간 (이용임, 안개주의보, 문학과지성사, ..
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