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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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 / 웨하스
여성민 / 웨하스 애인이 비밀번호를 바꾼 후부터 나는 웨하스를 먹어요 이유를 말할 수 없어야 슬픔이구요 타인이라는 말을 그럴듯하게 써먹어서 시인이 됐죠 타인과 귤나무 이런 시도 썼는데요 타인과 타자를 설명할 수는 없어서 연애도 평론도 못 하지만 고마워요 나는 과자처럼 예뻐요 그리고 당신을 설명합니다 당신도 나처럼 관념적인 사람이라면 이별한 후에 우는 당신은 타인입니다 울고 나서 이별하는 당신은 타자입니다 타살인가요 괜찮아요 나는 내 집에 살아요 타인은 타인의 집에 살고요 그것이 문득 슬픈 날 있듯이 조금 전에 나는 애인의 방에서 웨하스를 먹고 있었죠 웨하스를 만드는 사람은 누굴까 예쁜 사람일 거야 연애도 잘 하고 하모니카도 잘 불 거야 하모니카를 불고 나면 ..
2020.08.05 -
김지민 / 전향
김지민 / 전향 퇴직 후 아버지는 숲 해설가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 뒤편의 야산에 올랐다 야야 솔방울은 씨앗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너도 얼른 시집을 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나는 콱 불을 지르고 싶었다 젊은 애가 왜 허구한 날 방에만 누워 있느냐 아버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굽어보다 솔방울 같은 말을 툭 떨구었다 아버지 나는요 내가 도무지 젊은 것 같지가 않아요 내게 남은 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 몫의 씨앗을 다 털어낸 게 아닐까요 천둥이 치자 아버지와 나는 앞 다투어 산에 올랐다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숲의 심지가 젖어들었다 숲에 관해서라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았다 나무의 잎사귀가 저마..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