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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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
2020.11.16 -
이제니 / 계피의 맛
이제니 / 계피의 맛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며 너를 생각한다 몇 마리의 개가 거리 끝에서 거리 끝으로 달려간다 아네모네라는 말이 좋아 아네모네 꽃이 좋았다 손목시계는 손목에서 천천히 낡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수요일이고 화요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됐던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동트는 새벽의 닭 울음 같은 것이 듣고 싶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니 하면서 우는 희고 큰 닭 이제 죽고 싶지는 않니 하면서 우는 희고 큰 닭 꿈속에 두고 온 네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꿈속으로 가려면 나는 조금 늙어야만 한다 얼마간의 잠이 필요하고 얼마간의 망각이 필요하다 지난밤 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계피의 맛 너를 보려고 눈을 감으면 다시 한 번 계피의 맛 몇 개의 창문이 열리고 몇 개의 꽃이..
2020.11.16 -
이제니 / 아마도 아프리카
이제니 / 아마도 아프리카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호랑이, 그것은 나만의 것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는 것 살고 있나요 묻는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반은 쑥색이고 반은 곤색이다 쑥색과 곤색의 접합점은 성홍열 같은 선홍색 열두살 이후로 농담이 입에 배었다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손톱 끝에도 주황색 양파자루 속엔 어제의 열매들 양파가 익어가는 속도로 너는 울었지 눈을 감아도 선홍색이 보이면 다시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너무나 멀리 있지만 아마도 이미 아프리카 나는 하룻밤 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이제니 / 아마도 아프리카..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