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2)
-
김연덕 「white bush」
죽은 듯이 잠자고 깨어난 아침 나는 차가운 연기 속수무책 영토를 넓히는 얼룩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나를 보았다 계단에서 마당에서 처음 보는 현관 앞에서 기도하고 체조하며 어지럽게 얼어붙은 첫 공기와 서성이던 나는 나를 감싸고 보호하던 기름진 빛이 늦은 창피 한 겹이 사라졌구나 나 오늘부터 내가 살아보지 못한 몸으로 살게 됐구나 지대가 높은 구조가 아름다운 이 저택에서 낙엽들로 부산스럽던 지붕 아래서 우기다 눈물 흘리다 갑작스레 쫓겨날 때까지 지친 뿌리 마당 곳곳 파고드는 몸집으로 잠들기까지 긴긴 세월 대저택을 사랑하던 자 벽과 가벽 사이에서 허둥대던 자를 위한 새 이파리 새 현실이 주어졌구나 생활기도도 체조도 잘 되는구나 깨달았는데 우기던 계단과 창백하게 변색된 이파리 어제까지 오르내리던..
2021.08.19 -
김이강 / 호숫가 호수 공원
김이강 / 호숫가 호수 공원 죽은 나무 이파리들이 굴러다니는 호숫가를 지나면 식당이 있다고 했다 모자를 쓴 그와 내가 만나 손을 잡고 걷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왜 모자를 썼어? 그냥. 그냥? 아니. 자꾸 머리칼이 어디로 사라지잖아. 나는 그의 손을 만져본다 우리는 손가락들이 겹겹이 늘어나 자라는 것 같다 걸어도 호수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는 호숫가 호수 공원 여길 지나면 식당이 있는 거지? 응. 울타리를 둘러 가면 천천히 보인댔어. 우린 천천히 손잡고 천천히 걷는다 여기 어쩐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내가 어깨를 움츠리자 그도 어깰 올린다 햇살이 털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그의 얇은 몸이 이파리처럼 걷고 있는데 머리카락이나 바람이나 깃털..
2020.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