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강 / 호숫가 호수 공원
2020. 5. 2. 19:55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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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 호숫가 호수 공원
죽은 나무 이파리들이 굴러다니는 호숫가를
지나면 식당이 있다고 했다
모자를 쓴 그와 내가 만나
손을 잡고 걷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왜 모자를 썼어?
그냥.
그냥?
아니. 자꾸 머리칼이 어디로 사라지잖아.
나는 그의 손을 만져본다
우리는 손가락들이 겹겹이 늘어나 자라는 것 같다
걸어도 호수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는 호숫가 호수 공원
여길 지나면 식당이 있는 거지?
응. 울타리를 둘러 가면 천천히 보인댔어.
우린 천천히 손잡고 천천히 걷는다
여기 어쩐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내가 어깨를 움츠리자 그도 어깰 올린다
햇살이 털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그의 얇은 몸이 이파리처럼 걷고 있는데
머리카락이나 바람이나 깃털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순간이었을 때
그가 햇빛 사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울타리 너머에서 슬며시 호수가 어른거리고 있다
자라난 손가락들이 툭 툭 쏟아지고 있었다
그저 레코오드판 바늘 튀어오르듯*
어느 오후에 일어난 일이다
마지막 남은 손을 잡은 채로
우린 드디어 식당에 도착하고
근사한 저녁을 시작한다
테이블 위의 작은 촛대에
불이 켜진다
김이강 / 호숫가 호수 공원
* 기형도의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 오르듯이」에서.
(강성은 외, 어느 푸른 저녁,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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