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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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림 / 반달 모양의 보지*
주하림 / 반달 모양의 보지* 1 챙 넓은 모자 검은 모발 희고 커다란 코 입이 귀까지 찢어진 죽음을 보았네 2 경기도에 산다고 했다 넋 나간 목소리 혀 꼬인 발음이 어둠 속에서도 반듯한 나를 더듬더듬 짚어가는데 그러나 언니…… 미안해요 난 벌써 약에 취했어요 도나웨일 노래를 듣고 있어요 mi, ZBC, HYUNGIN25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게 수면제 그러니까 언니…… 대화라는 건 어렵지만 늘 내가 그린 그의 초상화를 가까이 두고 있어요 그가 왼쪽 눈을 감을 때 단숨에 스케치해나갔던, 너는 뭐 때문에 죽고 싶니 외로워 불쌍해? 실연이라 말하면 우리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나요? 같이 술을 마시고 포켓볼을 치며 쓸모없는 남자들을 꼬시며 언니……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사는 걸까 3 아니 여전..
2020.12.11 -
류시화 / 바르도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류시화 / 바르도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1 달 표면 오른쪽으로 거미가 기어간다 월식의 흰 이마 쪽으로 어느 날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밤늦은 시각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흰 빗금을 그으며 산목련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거미가 달의 뒷면으로 사라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텅 비고 깊고 버려진 목소리 망각의 정원에 핀 환영의 꽃 같고 육체를 이탈한 새의 영혼 같고 얼마큼의 광기 같은 당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요? 전화는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 당신 아직도 거기 있어요? 당신 아직 거기 있어요? 2 지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매화는 피었나요 소복이 삼월의 마지막 눈도 내렸나요 지난번 가시에 찔린 상처는 아물었나요 그 꽃가지 ..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