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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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투신천국
정끝별 / 투신천국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대 세 명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 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
2020.02.29 -
김신혜 / 최선의 감옥
김신혜 / 최선의 감옥 설원의 끝에는 북쪽이라 불리는 감옥이 있다 불에 타 죽은 개와 얼어 죽은 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다 열쇠 꾸러미를 허리춤에 달고 걷는 교도관과 보폭을 맞추는 죄수들 그것이 최악인 사람과 그것이 최선인 사람이 걸어간다 이미 죽은 사람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가정 어느 방향으로도 짖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절벽을 오른다 아무도 북쪽 끝까지 가보지 않았지만 동전을 던지고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깊은 웅덩이를 만든다 얼어 죽은 개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무덤 속을 비추면서 바닥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파리는 시들지 않고 죽어가는 개는 죽지 않는다 사과나무 위에 피어나는 사과나무들 씨앗이 싹틀 때 씨앗을 낚아채는 새의 발톱 그림자 하나로도 수백 개의 음표가 완성되..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