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박쥐」
우리의 침대는 서로 다른 대륙에 놓여 있어서 내가 잠들 때 너는 일어나고 내가 일어날 때 너는 잠들지 어제 내가 보낸 두 손을 받아보았니? 네 아침의 대륙으로 보낸 나의 밤 선물 네 침대 밖으로 네 손이 툭 떨어지고 네 손을 서랍처럼 잡아끌던 뜨거운 열 손가락 너 놀라지는 않았니? 그런데 네가 그 손목을 잘라버린 건 아니니? 아, 지금은 없는 두 손목이 나는 거기서 아파 멀리 수평선 위로 핏방울 하나 떠오르면 희디흰 이불 홑청 위로 붉은 물이 아프게 아롱지고 입안에 도는 피 냄새 내가 또 그 피거품 속에서 없는 두 손목을 들어 하루 종일 편지를 쓸 시간이야 내 뜨거운 검은 주먹이 네 천장에 매달려 피를 말리고 있나 봐 너는 알고 있니, 내가 그 검은 피를 찍어 네게 이 편지를 쓴다는 거 우리의..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