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박쥐」
2021. 1. 30. 13:30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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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침대는 서로 다른 대륙에 놓여 있어서
내가 잠들 때 너는 일어나고
내가 일어날 때 너는 잠들지
어제 내가 보낸 두 손을 받아보았니?
네 아침의 대륙으로 보낸 나의 밤 선물
네 침대 밖으로 네 손이 툭 떨어지고
네 손을 서랍처럼 잡아끌던 뜨거운 열 손가락
너 놀라지는 않았니?
그런데 네가 그 손목을 잘라버린 건 아니니?
아, 지금은 없는 두 손목이 나는 거기서 아파
멀리 수평선 위로 핏방울 하나 떠오르면
희디흰 이불 홑청 위로 붉은 물이 아프게 아롱지고
입안에 도는 피 냄새
내가 또 그 피거품 속에서
없는 두 손목을 들어 하루 종일 편지를 쓸 시간이야
내 뜨거운 검은 주먹이 네 천장에 매달려 피를 말리고 있나 봐
너는 알고 있니, 내가 그 검은 피를 찍어 네게 이 편지를 쓴다는 거
우리의 침대는 서로 다른 대륙에 놓여 있어서
밤이 와야만 내가 너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
나는 지금 손이 없는데, 그 없는 손목이 내도록 아파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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