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느러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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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그해 여름
허연 / 그해 여름 # 1 미국 드라마는 병실에서 섹스를 했다. 여배우는 꼭 창틀에서 한쪽 다리를 든다. 일종의 백기인 셈이다 # 2 한 달 내내 내리는 비에게 예를 갖춘다. 바다는 늘 익사한 자들만 받아들인다. 익사한 자들은 지느러미를 얻었다 # 3 부고가 도착했다. 따로 태어나서 따로 죽는다. 예도는 거짓이다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은 죽지 않은 자다. 죽음을 모르는 자다 # 4 철조망 앞에서 울고 있는 할머니에게 시절은 형벌이다. 강한 자만이 세월을 견디는 게 아니라 한 맺힌 자들도 시절을 견딘다 # 5 열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예뻤고 나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는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그날 밤 파이닝거의 돛단배를 타고 북회귀선으로 가는 꿈을 꿨다 # 6 세월은 ..
2020.12.31 -
박연준 / 융단, 모르핀, 매니큐어에게
박연준 / 융단, 모르핀, 매니큐어에게 까만 바다에 빠져봤어? 사람들은 날마다 바다의 도시화를 꿈꾸지 두려워하지 마 내 상체가 해초처럼 흔들리고 팔이 별안간 여덟 개가 되지 어젯밤 너희 셋을 위해 팔을 다섯 개나 뽑았어 그런데 왜 먹지 않았니? 전화벨이 끊겼다, 이어졌다 반복되고 나는 그 반복 사이에서 액체가 된다 보글보글, 기다림이 삭는 소리 소리는 물속에 잠기면 진동이 되지 그건 물들의 비명이야 사랑을 잃고, 띄엄띄엄 울다 자는 밤 산화되는 기억 속 너희들의 지느러미, 누군가를 부르는 파닥이는 힘- 하늘을 봐 바람이 별을 작곡하고 있어 박연준 / 융단, 모르핀, 매니큐어에게 (박연준,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문학동네, 2012) https://www.instagram.com/d..
2020.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