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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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 고백의 탄생
허준 / 고백의 탄생 휴게소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베어 물고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당신을 만났다 그때 혹은 전생의 어느 길에서 우리는 그 후 시간으로 덧칠이 되어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후에 한쪽이 빈 가슴으로 일면식이 없었던 당신이 지나쳐갈 때 아직 이별을 알지 못하는 말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때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당신은 올라오는 중이었는데 이미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있었지만 바람 탓이었을까 이마가 싸늘하게 식었다 서로를 바라보던 그 짧은 만남도 금방 식었다 흘깃 당신의 일생을 보았다 그때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방어를 내려놓았고 저편에서 한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 만남의 기록은 입으로 기록되지는 않을지라도 고백이라는 형식으로 남을 것이다 그 책은..
2020.08.10 -
박세미 / 피규어
박세미 / 피규어 옆으로 돌아눕곤 했다 누워서 보면 책장들은 모두 기울어져 있는데 왜 책들은 쏟아지지 않지 어린 손에 들린 저 장난감만큼 작아졌으면, 기도하는 중에 방은 지평선을 가진다 작아지거든 선명해지거든 독촉장을 읽지 않아도 친구를 찾지 않아도 돼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귀한 존재는 되지 않아야겠다 공장에서 태어나자 일정한 치수의 발을 가지고 간결한 가격표를 달면 이제 아무데서나 엎어져 있어도 상관없지 완벽한 자세와 날마다 똑같은 기분으로 더이상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 경험 많은 늙은 손이 나를 집어드네 꺾어진 관절들이 곧게 펴 상자 속에 눕히면 뚜껑이 덮힌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박세미 / 피규어 (박세미, 내가 나일 확률, 문학동네, 2019) https://www.in..
202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