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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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 여기 사람 아니죠
김이듬 / 여기 사람 아니죠 북국 해변 아니다 유럽식 전원주택 거리를 걸어 봤다 그는 말했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유명한 동네죠, 한끼줍쇼, 그 프로 봤어요? 대뜸 문 두드리는 건 무례한 일 아닌가요? 태곳적에서나 가능했을 일인데 텔레비전도 보며 살아야 대화가 된다고 했다 근처에 푸른 얼음 떠다니는 인공 호수가 있었지만 볼수록 이상하고 염세적인 여자라며 여기서 이만 안녕하자고 했다 더 야위고 더 창백한 여자가 서 있다 이상하게 가게 거울들은 수척히 반영한다 어디서 왔어요? 외투를 벗으라 하며 미용사가 물었다 외국에서 자주 듣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는데 머리를 자르면 긴 얼굴이 더 길어 보일 거라고 했다 사투리를 쓰면 웃는 사람이 많다 진주 가는 건데, 꼭 지방 내..
2020.06.25 -
이홍섭 / 터미널
이홍섭 / 터미널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서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홍섭 / 터미널 (이홍섭, 터미널, 문학동네, 201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9